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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죽게 두지 않겠다” 온전한 중대재해법 시행에 팔 걷고 나선 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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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63회 작성일 22-02-22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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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는 죽게 두지 않겠다” 온전한 중대재해법 시행에 팔 걷고 나선 전문가들

12개 단체·135명 회원 ‘중대재해전문가넷’ 출범
“시민·노동자 생명, 안전 지키고 대안 제시할 것”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창립 총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22일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창립 총회에서 연대사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1월29일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3명 사망), 2월8일 경기 판교 신축공사장 승강기 추락(2명 사망), 2월11일 전남 여천NCC 공장 폭발(4명 사망)…. 중대재해처벌등에관한법률(중대재해법) 시행 보름 만에 3건의 중대재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양주시에서 채석장을 운영하는 삼표산업을 중대재해법 1호 대상으로 입건해 수사에 나섰다.

연일 계속되는 중대재해를 보다 못한 학자와 전문가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12개 단체와 개인회원 135명이 소속된 ‘중대재해 예방과 안전권 실현을 위한 학자·전문가 네트워크(중대재해전문가넷)’는 22일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창립 총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회원들은 대부분 2020년 12월 중대재해법 제정 촉구 학자·전문가 공동 선언을 계기로 법안 의견서 제출, 정부 당국자 면담, 언론 기고 등의 활동을 꾸준히 이어 왔다.

우여곡절 끝에 중대재해법이 제정됐고 올해부터 시행까지 됐는데 왜 새로운 단체를 출범했을까. 이들은 현행 중대재해법에 대해 “시민 10만명이 발의하고 산재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성취해낸 소중한 결과”라면서도 “중요한 내용들이 빠진 반쪽짜리 법”이라고 평가했다. 법 제정 과정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방지할 벌금 하한선이 사라진 점, 사망 사고의 22%가 발생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제외된 점, 사고 원인을 찾기 위한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빠진 점 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중대재해전문가넷은 이날 창립선언문에서 “중대재해에 대한 학술적, 전문적 역량을 강화하고 지식과 경험을 나누며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태안화력발전소 산업재해로 아들 김용균씨를 잃은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총회에 참석해 “법이 만들어짐에도 계속되는 죽음을 멈출 줄 모르니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며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실효성 있는 법이 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노력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 1월30일 소방당국이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 현장에서 야간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30일 소방당국이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 현장에서 야간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총회에 이어 열린 심포지움에서는 ‘중대재해법 1호 사건’인 삼표산업 채석장 사고와 중대재해법 현황·과제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는 “삼표산업 사고에 대한 사법처리가 중대재해법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안전과 재해에 대한 사법기관의 규범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법에서 처벌 대상으로 정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을 명목상 대표이사가 아니라 실제 기업을 지배하는 이로 판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또 권 변호사는 삼표산업의 채석장 사업을 산림청과 시청, 노동부 등 7개 기관이 14년간 허가했지만 안전 사고가 난 점을 두고 “감독 의무를 위반하거나 게을리한 공무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 ‘종사자’에 무급 가족종사자나 무급인턴, 자원봉사자, 5인 미만 사업장 종사자 등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법상 ‘대가’를 반드시 금전적 대가로 엄격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상시근로자의 개념에는 계속 근무하는 종사자뿐 아니라 그때그때 근무하는 일용근로자도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상시 5인이라는 형식적 기준으로 적용을 나누는 방식은 재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영국 변호사가 22일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창립 총회에서 창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권영국 변호사가 22일 서울 영등포구 노동자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중대재해학자전문가네트워크 창립 총회에서 창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기업의 반발 움직임은 적극 비판했다. 앞서 대형 로펌들이 중대재해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터였다. 권오성 교수는 “아직 기소된 사례조차 없는 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위헌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며 “면책조항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법의 체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그냥 이 법이 싫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숙 이사장은 “(위헌법률심판제청에) 어떤 대안이 있을지 무척 걱정도 된다”며 “전문가들이 모여 힘을 합친다면 비인간적인 만행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중대재해전문가넷은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통한 법 개선, 중대재해 사례 분석, 산업안전행정 대책 제안, 사회적 인식 확대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원문 :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202221413001